▲ 진성진 변호사

나는 책 사는 것을 좋아한다. 한때 교보문고 VIP 회원인적도 있다. 책만 잔뜩 사놓고 읽은 책은 별로 없다. 그래서 아내로부터 눈총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택배로 배달된 책을 펼치자마자 2시간 만에 후딱 읽은 책이 있다.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이다. 나는 이 책을 벌써 세 번 읽었다. 그만큼 흥미롭다.

우선 이 책은 인간이 100% 동물임을 전제로 한다.

“인간이 농경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문명을 가진 것은 길게 잡아야 6 천 년 전부터다. 세대로 따지면 약 250세대. 인간과 침팬지가 진화의 여정에서 갈라진 것은 대략 6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약 30만 세대 전. 시간을 1년으로 압축한다면, 인간이 문명생활을 한 시간은 365일 중 고작 2시간 정도다. 364일 22시간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사냥, 그리고 짝짓기에만 전념하며 살아왔다. 동물이기 때문에. 그러나 우리는 1년 중 고작 2시간에 불과한 이 모습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더 이상 동물이 아닌 줄 안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과연 600만 년 간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 버릇들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까? 절대 그럴 수 없다. 인간은 여전히 100% 동물이다!” 듣고 보니 과연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은 ‘여성들은 임신이 가능한 시기가 되면 자신들도 모르게 그들의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다가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 연락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놀랄만한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여준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모든 생명체의 지상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우생학적으로 불리한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한 ‘근친감지시스템’이 우리들의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연구결과를 동료 변호사들에게 소개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아무도 공감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조사에 응한 여대생들조차 이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의 매력은 인간이 100% 동물임을 전제로 하면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이타적인 동물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돈과 시간을 자신을 위해서 쓸 때 보다 남을 위해 쓸 때 더 행복감을 느낀다. 왜 인간은 이기적인 행동을 할 때 보다 친사회적(=이타적)인 행동을 할 때 더 행복감을 느낄까? 장기적으로 친사회적인 행동은 타인과의 결속력을 높여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단기적인 관점에서 고기를 나누어 먹는 것은 손해다. 이 손실감을 상쇄하는 강력한 보상이 필요한데, 그것이 즐거움 일 수 있다. 나의 도움을 받고 고마워하는 친구의 얼굴을 볼 때 나도 기쁨을 느껴야 한다. 그래야 또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이 과정에서 생긴 친구는 훗날 죽을 고비에서 나를 구해줄 수도 있다. 결국 진화과정에서 도움을 줄 때 기쁨을 느꼈던 자들이 선택적으로 더 많이 생존하게 되고, 그들의 유전자를 통해 우리는 이 습성을 물려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결국 이 책은 자기희생적 봉사의 삶이 결코 말 그대로의 ‘희생’이 아닌 봉사자의 행복추구과정임을 과학적으로 보여준다. 남을 위하는 이타적 행동이야말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극히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멋진 결론을 과학적 검증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그렇게 훌륭하게 진화된 멋진 원시인의 후손이라니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놀라운 일인가!

“행복에 있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의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 때 쾌감이라는 전구가 켜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타인과 교류할 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이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된다.’ 레바논의 속담이다.”

또한 이 책은 행복은 돈, 명예, 학력 등 외적인 조건에 의하여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구체적인 경험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설파한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고, 그것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초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한 번의 커다란 기쁨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따라서 행복은 기쁨의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다. 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기쁨이 중요하다. 결국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비슷하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다. 내 손 안의 아이스크림만큼은 녹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의 거창한 것들을 쫓는 이유다. 하지만 행복 공화국에는 냉장고라는 것이 없다. 남는 옵션은 하나다. ‘모든 것은 녹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다.”

‘사랑을 찾아서, 사람을 찾아서, 오늘도 헤매고 있잖아!’

요즈음 30-40대 사이에 인기절정인 그룹 ‘장미여관’의 히트곡 ‘봉숙이’ 끝 부분이다. 행복의 요체는 결국 사람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쟁이들이 행복의 유전자를 뜸뿍 안고 태어난 것이라는 이 책의 결론을 잘 대변해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책을 읽고 흥미를 느낀 무렵에 ‘봉숙이’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18번으로 삼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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