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시를 중심으로한 온라인 다음 카페의 이름 중에 '거제도 인맥만들기'라는 카페가 있다.
이 카페에는 3262명의 회원이 드나들며 봉사활동과 생활 이야기와 사진을 통해 삶의 교감을 나눈다.

나도 거제에 와서 이 카페와 가끔 대화를 한다.

특히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6살 '소율이 이야기'는 내가 거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책임감을 느끼게도 했다.

6살 소율이는 완도에 사시는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 바닷가에서 놀다가 파도에 휩쓸린 사고로 저산소증 뇌손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서 눈동자조차도 움직일 수 없는 식물상태로 투병 중 이였다. 소율이 아버지는 조선소에서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가출 한 상태며 오빠는 할아버지 댁에 맡겨진 상태이다.

▲ 동부 마하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소율이
카페의 회원들은 비오는 이른 봄날 몇 주에 걸쳐서 자선 모금 콘서트를 열고 책과 저금통과 음악과 감동으로 소율이 돕기에 힘쓰고 있다.

많은 사람이 모금에 참여한다. 함께 하려는 마음을 찾아 본다. 든든한 응원단이며 기쁨을 주는 삶의 동반자이다. 진정한 거제인들이다.

▲ 동부 마하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소율이

▲거제도인맥만들기 회원들의 자선모금
나는 과연 무엇으로 거제를 사랑하는가? 거제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거제는 과연 어떠한 도시인가? 거제에 와서 일 하면서 버릇처럼 이러한 질문이 따라 다닌다.

그러나 나는 가끔식 서울에서 만나는 오랜 친우들에게 “거제에 오기를 정말 잘 했다”고 힘 주어 말한다.

내가 거제를 만난 것은 “인생이란 긴 여행 중에 마지막 꿈을 마무리 하는 시간이고 새벽별의 여명이 동터 오는 시간이다” 라고....

이 거제는 6.25 전쟁 당시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반공포로로 3년을 고생하신 아버지가 계셨던 곳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자유로이 거제도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3년이 시간이 주어 졌다.
3년의 시간이다. 이 3년의 시간을 녹쓸어 없어지기 보다는 닳아서 없어지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장승포로 들어오는 대우조선의 남문 앞 도로에는 벗꽃길이 유난히도 아름답다.
눈처럼 가비얍게 살포시 춤추듯 내려 앉는 벗꽃 조각들이 나에게 속삭인다.
“너는 이 길을 보며 어떠한 사랑을 꿈꾸고 있나” 라고...

돌아 가신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나는 인생 후반기에 거제와 함께 거제를 위해 일하고 싶은 꿈이 있다. 그것이 포로수용소 생활에서도 참고 견디신 아버지께 인정 받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면 아버님이 경험하고 적어 놓으신 거제포로수용소 생활의 자서전일부를 신문에 게재하려 한다.

거가대교 개통으로 포로수용소 관광객들이 몰라보게 늘어 났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25만 수용소의 포로들의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을 생생한 체험담을 들려 주고 싶다.

도다리 쑥국 맛을 보며 60년전 포로수용소의 한 명 이셨던 아바지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거제에도 분명 새 풀 옷을 갈아 입은 봄 처녀가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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