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의 꿈이 이뤄지면서 남아공 더반에서 열렸던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은 막을 내렸다.

최종 프레젠테이션에서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외모로 IOC 위원들을 사로잡은 나승연 유치위 대변인은 국민들의 큰 관심 속에 '더반의 스타'로 떠올랐다.

나승연, "이번 경연은 지리적인 위치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꿈과 사람의 가능성에 대한 경연입니다."

차분한 표정과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나승연 대변인.

나 대변인은 후보도시의 강점을 국제적 감각으로 효율적으로 전달해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프레젠테이션의 여왕이란 별명도 얻었다.

나 대변인은 영어는 물론 불어로도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 YTN 중계방송.   프레젠테이션 하고 있는 나승연 대변인

사진출처: YTN

나승연, "올림픽은 아름다운 스포츠를 통해서 사회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독특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나 대변인이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갖춘 것은 어린 시절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12년 동안 해외에서 머문 덕분이다.

고등학교 때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했고 이후 한국은행을 거쳐 아리랑 TV의 기자와 앵커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 여수 엑스포와 한일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도 활약했다.

방송을 통해 프레젠테이션을 지켜 본 많은 시민들은 노련하게 프레젠테이션을 이끌어가는 나 대변인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나 대변인이 검색어 순위에 오르기도 했고, 7년 출연했던 CF가 뒤늦게 화제를 모으기도 한 상황이다.

나씨의 프레젠테이션 실력은 다양한 언어를 접하며 성장해온 이력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케냐·멕시코 대사를 지낸 외교관 아버지 나원찬씨를 따라 영국·덴마크·캐나다 등 다양한 언어권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989년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언어에 대한 관심은 계속됐다. 91년 이화여대에 진학해 불문학과 영문학을 복수 전공했다.

95년 대학 졸업 후 처음 선택한 직장은 한국은행.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듬해 아리랑TV로 자리를 옮겼다. 뉴스 앵커, 퀴즈쇼 MC 등을 맡으며 영어 진행 능력을 쌓았다. 옛 동료인 안착히 jTBC 기자(전 아리랑TV 기자)는 “(나 대변인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침착하게 성과를 내는 스타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나씨는 사랑에서도 은근한 면모를 보였다. 고1 때 캐나다에서 교포 대학생이었던 남편 앤서니 김(40)과 만났다. 나씨가 한국 대학에 진학했지만 사랑은 계속됐다. 2000년 무역회사에 다니던 남편과 결혼에 성공했다. 남편은 현재 서울 이태원에서 ‘교토푸’라는 디저트바를 운영하고 있다.

2000년 3월 아리랑TV를 퇴사한 나씨는 프리랜서 자격으로 아리랑TV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2004년 ‘쇼 비즈 엑스트라’를 진행하며 한국 연예계 소식을 해외에 알렸다. 당시 일기 시작했던 한류 붐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나씨는 또 한·일 월드컵과 여수엑스포유치위원회 등 국제 행사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말’을 가다듬었다. 안착히 기자는 “(나 대변인은) 한국인의 정체성이 있으면서도 고급스러운 영어를 구사한다. 국제 무대에서 품격 있는 진행을 하기에 적합한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나씨는 8일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대표단의 입국 행렬에 함께하지 못했다. IOC 위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느라 홀로 남아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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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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