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경칩이 지나면 춘분이다.

우리 거제에도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춥고 혹독했기 때문일까?
어느 해보다 더 봄이 기다려진다.


금년에는 단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연평 해전과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이라는 역병의 소식들이 가뜩이나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짓눌렀었다.
그래도 변함없이 봄은 종종걸음으로 장승포의 방파제를 넘어서고, 지심도의 동백들은 차가운 바닷바람을 이겨내며 붉은 옷을 갈아 입는다.

썰매타고 구슬치던 어린 시절에는 봄을 손등으로 느꼈다.
양지바른 담 한켠에는 겨우내 메말랐던 가지에서 파릇파릇 새순이 돋고, 동네 꼬마들은 차가움으로 튼 맨살로 해변으로 산으로 뛰어다녔다.
두툼한 점퍼하나 변변이 없이 얇은 옷가지를 입고 내달리는 아이들의 몸이지만...
아지랑이가 흐르는 언덕에는 맑은 햇살과 바다바람의 향기가 기웃기웃 올라온다.
샛바람의 냉기를 가로지르며 날아오르던 갈매기도 선착장 폐선위에 사뿐이 모여 앉는다.
이번 겨울에는 새로이 부산을 잇는 신비의 바닷길이 열려 벅차오르는 감동으로 바다위로 걸을 수 있었다.

며칠 전 우리 지역신문에 독특하고 아름다운 사진이 실렸다.
겨우새 한마리가 갓 피어난 매화가지에 앉은 사진이다.
구조라에서 날아온 봄소식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먼저 꽃소식을 전하는 곳이 구조라이다.
봄의 전령사이신 옥건수 작가에게 감사드린다.
(사진작가: 옥 건수)
구조라를 스토리텔링하여 전국에 알리고 싶어 얼마전 지금은 폐교가된 구조라 초등학교를 가본적이 있다.

이번 겨울은 거제에서 맞이한 첫번째 겨울이었다.
항상 따듯한 곳으로만 알았던 나에게는 예상외로 혹독한 한파였다.
그도 그럴것이 17년을 캘리포니아에서 살다 온 탓도 있는것 같다.
거제에 와서 이제 봄을 맞는다.

거제 사람들과 거제의 바다는 수많은 교훈을 준다.
포로수용소와 임진왜란, 폐왕성과 둔덕기성, 장승포와 흥남 철수작전...

문학과 음악, 미술과 무용 그리고 사진과 연극이 막혔던 숨통을 열어주고 한 조각 살아갈 힘을 주는 게 아닐까.
짜여진 스케쥴과 빡빡히 정해진 틀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자연지향적 감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올 봄에는 지난 겨울 단 한차례의 감기 몸살 만으로 추위를 이겨낸 거제의 많은 친구들에게 특별한 상으로 뜻있는 공연을 열어 주고 싶다.
“해금강 하모니”...
“해금강 하모니”라는 제목으로 거제 어머니 합창단을 모시고 해금강 “바람의 언덕”에서 야외 공연을 하고 싶다.
모든 연령대의 거제인이 모여 “자연의 감성으로부터 생명을 노래하는 정신의 호흡을 하고 싶다”.
봄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준비를 하여 지역인들을 초청하고 5월에 해금강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다.

지난 5개월 동안 만난 거제의 지역문화예술인과 금년에도 서로 배우며 경험을 하게 될 이번 봄이 ‘내 생애 최고의 봄’이 되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든다.

장승포 우체국을 지키는 소나무와 함께 첫번째 봄을 맞으며 새벽 항구에 들어온 갈치배와 멸치 배들과 함께 금년 한해의 거제문화예술이 황금빛 인연들을 어떻게 맺을까 미리 그림을 그려본다.

거제의 기온과 날씨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깊은 겨울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많은 그림도 보러 다녔다.
색채 속에서 무한 자유를 누린 샤갈의 그림과, 하늘나라로 가신지 벌써 20주년이 되는 장욱진 화백의 감성의 그림이 겨우내 소진된 호흡을 숨가쁘게 채워 주었다.

이제부터라도 우울할 때 거제대학 뒷산길을 걷거나 신나게 소리내어 “떠나가는 배” 노래도 불러 볼까 한다.

나의 조그마한 사무실에는 언제나 백남준 화백의 아트포스터 한장이 걸려있다.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한 봄은 항상 내 곁에 와 있음을 잊지 않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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