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재 교수
손호재 교수

【거제인터넷방송】=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가 운동을 지속하려면 외부에서 끝임 없이 힘이 제공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약 2000년이 지난 후 17세기 아이작 뉴턴은 외부에 힘을 작동시키지 않으면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해서 그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고 정지한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한다고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에서야 누구나 뉴턴이 정의한 것을 믿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매우 혁신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운동의 지속성의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견해인 반면 뉴턴은 그 지속성에 외부의 힘이 아니라 다른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바로 관성이다.

관성이란 운동 상태의 변화를 하려는 것에 대한 저항력이다. 관성이 크면 클수록 운동 상태는 지속하고 변화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뉴턴은 1687년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에서 운동 법칙 세 가지를 제시하면서 그 첫 번째가 관성의 법칙을 설명하였다. 뉴톤은 그 만큼 관성을 중요한 것으로 판단한 것은 아닐까? 자동차 충돌의 문제, 이불에서 먼지를 털어버리는 것, 안전벨트를 매는 행위, 마찰력에 의한 정지, 승강기의 가속도, 달리기 하는 행위 등 많은 자연과학 현상들을 현재 이 관성의 법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과학적인 내용만이 아니라 사회 현상에서도 관성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을까?

관성의 법칙을 일상생활과 가장 잘 연결할 수 있는 것은 습관이다. 사람들은 오랜 기간 자신의 버릇이나 행위를 유지하려고 하지 변화를 하지 않으려는 것을 습관이라고 한다. 이를 관성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김유신이 말을 목을 벤 것도 말의 관성적 행위에 대한 이야기이다. 건강을 위해 살을 빼야 하는 행위에 따른 자신의 의지보다 외부의 힘에 의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도 관성이란 습관의 변화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다. 담배를 끊을 때 주변에 큰 소리로 금연을 발표를 해서 외부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행동 역시 관성에 관한 것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른 관성에 관한 사회현상을 이야기해보자.

요즘 주변에서 나중에 사실로 확인이 되는 거짓말을 매우 쉽게 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자기 합리화에 근거를 두었다기보다는 관성에 의한 행위로 볼 수 있다. 관성이란 과거에 지속해왔다는 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다. 관성의 관점에서 보면 거짓이 들통 난 경우는 한 두 번의 거짓이 아니라 매우 많은 거짓이 쌓여 도덕적 불감증에 도달하고 그것이 스스로 자기합리화의 위치에 도달하면 습관적 그리고 관성적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그래서 습관이란 관성은 무서운 면이 있는 것이다.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어려우면 외부의 힘을 적절하게 빌려 보는 것은 개선의 의지가 보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개인과 조직이 함께 한 거짓이 관성이 되어 자기와 조직의 일체화 하는 행위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도달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뉴턴을 잘 알고 이론적으로 뉴턴역학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어 뉴턴의 사고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선입견을 배제하고 통상 경험만 떠올리면 언뜻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가 더 마음에 와 닿을 수도 있다. 중세의 세계관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고의 예로 소가 수레를 끄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분명한 것은 계속해서 끌지 않으면 수레는 움직이지 않는다. 즉, 수레가 계속 굴러가기 위해 계속해서 힘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게 된다. 이는 마찰력 때문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 마찰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속적인 외부의 힘만 필요한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보기에는 수레는 관성의 법칙을 따르기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따르는 것 같다. 거짓말이란 수레도 계속하기 위해 외부의 힘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이 되지만 중요한 것은 한 번 시작된 거짓은 계속해서 다시 하게 되는 것이라는 뉴톤적 사고인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이라도 쉽게 봐서는 되지 않는다.

관성의 크기는 어떻게 될까?

관성은 물체의 질량에 정비례한다. 정지해 있는 상태라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매우 큰 질량을 가지고 있는 물체에 발생하는 관성의 힘도 엄청나지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세게 밀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 조직이 외부에 영향에 의해 변화를 만드는 것은 매우 힘들다. 생물과 같이 움직이는 큰 조직이 관성을 가지고 나쁜 행위를 할 때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더욱 힘든 것이다. 관성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큰 힘이 필요한 것이다. 고로, 관성에 의한 거짓은 무엇인가 더 큰 힘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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