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인터넷방송】=

문상모
문상모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업체들이 카타르 국영 석유회사와 선박 발주 권리를 보장하는 약정(約定)을 함으로써 사상 최대 규모 사업으로 꼽히는 카타르 LNG 프로젝트에서 대규모 선박 수주를 예약(豫約)했다.

이 약정은 최종 계약을 하기 전, 선주가 특정 조선소 건조 공간을 미리 확보한다는 내용이다. 앞으로 협의 과정이 남았지만, 계약 규모는 약 23조 6천억 원, LNG선 최대 100척이 발주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LNG선 계약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계약이 체결되면, 대형 조선업체들은 해마다 20척 안팎의 LNG선 수주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1년 치 수주 금액 확보는 물론 동일 선종의 연속 건조로 생산 효율성도 높일 수 있어 지난해 수주 목표 달성에 실패했던 대형 조선업체들은 대형 사업의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올해는 코로나19와 저유가로 세계 선박 발주가 지난해보다 62%나 줄어 조선업 시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수주 절벽에 내몰렸던 조선업계는 조선업 불황 탈출의 계기가 될 수 있기에 기대가 매우 크다.

세계적인 조선소인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시는 조선의 도시이다.

세계 조선 시장이 호황을 누렸던 1990년대말 이후 양대 조선소에는 한 기당 1조원에 이르는 해양플랜트를 비롯해 각종 선박 수주가 잇따랐고, 선박 인도일에 맞추기 위해 거제 외부에서 기술자들이 팀을 이뤄 속속 들어왔다. 2012년까지는 거제 경기가 좋았다.

이 시기 양대 조선소는 연간 30조 수주 물량으로 호황(好況)을 누렸다.

1997년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있을 때에도 거제에서는 IMF가 없었다고 한다.

그랬던 거제 양대 조선소의 운명이 바뀌었다. 회사마다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 대규모 감원과 구조조정의 여파는 하루아침에 거제시를 불 꺼진 도시로 만들어버렸다.

현재 양대 조선소의 연간 수주는 15조 이하로 반도막이 나버렸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조선산업 부활(復活)의 기회를 잡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러던 중 한국과 카타르 양국의 신뢰(信賴)와 문재인정부의 경제외교 결실로 LNG선 23조 6천억원, 100척 수주 예약이라는 낭보는 조선산업의 도시 거제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무지개가 떴다. 실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가장 큰 수혜를 입게 될 거제시는 이번 카타르 프로젝트가 조선업 불황 탈출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즐거워하지 못하는 계층이 있다. 바로 협력사에서 근무하는 하청노동자들이다. 이번 사업이 생존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중소 조선업계와 노동자 (하청노동자)에게도 온기가 전해질지는 미지수다.

불법과 차별이 난무하는 조선산업은, 과거 호황이던 시절이나 불황의 긴 터널을 힘겹게 보내고 있는 지금이나 노동자(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노동자 중에서도 더 심각한 문제는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다.

4대보험 미가입, 임금체불, 불법적인 임금삭감, 부당해고는 물론이고 위험한 작업장에는 어김없이 하청노동자들이 작업을 해야 하는 구조에서 좀처럼 나아진 것이 없다. 생명을 걸고 작업에 임하지만 원청 노동자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처우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왜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하지 않나?

‘더불어’, ‘함께’라고 하는 공존(共存), 공평(公平), 상생(相生)의 사회대통합의 정신을 원청과 하청의 지배구조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심화되고 갈수록 격차가 더 벌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원청→사내하청→사외하청→물량팀→또 다른 물량팀]으로 이어지는 구조로 인해 특히 사외하청과 물량팀에 소속되어 노동현장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 임금 체불, 열악하고 위험한 작업환경, 불안한 고용형태, 기대조차 할 수 없는 복지 등 노동자로서 온전하게 보호받아야 할 법과 제도에 의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이 시간에도 목숨을 걸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시장에서 자율로 개선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법과 제도만이 약자인 하청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다.

언제까지 하청노동자들에게 낮은 처우와 비인간적인 작업을 시킬 것인가?

언제까지 원청 자신들의 배불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것인가?

약자인 하청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서는 원청사의 파트너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내 것을 조금 내려놓고 함께 이익을 공유(임금격차 해소)하겠다는 공생의 파트너쉽 없이는, 정부가 법과 제도만으로 사기업인 원청사의 모든 것을 고치는 데는 분명 한계가 따른다.

우리경제의 저성장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해서 심화되고 있는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二重構造)를 개선해야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노동시장의 안정된 고용상태와 높은 임금, 양호한 노동조건 등을 보장받는 1차 노동시장,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 등을 가진 2차 노동시장을 일컫는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1980년 1.1배에서 2014년 1.7배로 커졌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되면 생산성이 저하되고 소득불균형이 심화되어 성장잠재력이 약화된다.

이를 원·하청 단계별로 보면 1차 협력업체의 상대임금은 56%, 2차 협력업체에서는 절반을 하회하는 수준이며, 3차 이상 협력업체에서는 32%에 불과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인원축소는 ‘희망퇴직’, ‘정리해고’와 같은 절차를 거쳐 진행된다. 반면 하청노동자의 경우엔 ‘하청업체 폐업’을 통해 대량해고가 발생한다. 그래서 절차도 필요 없고 하청노동자의 저항도 거의 없다. 운 좋게 다른 하청업체로 옮겨서 계속 일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쫓겨나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하청업체가 폐업하면 일자리만 잃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체불임금이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체불된 임금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청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인 원청 조선소는 현행법으로는 체불임금을 지급해야할 법적 책임이 없다. 이러다보니 하청업체가 폐업해 체불임금이 발생하면 하청노동자는 국가가 지급하는 체당금 이외에는 못 받고 포기하게 된다.

조선소가 밀집한 거제․통영․고성 지역의 체불임금 증가는 더욱 심각하다. 2016년 전국적으로 체불임금이 약 10% 늘어났는데 거제․통영․고성 지역에서는 2.7배(270%) 늘어난 것이니 그 심각성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1인당 체불임금액도 2015년 410만원에서 444만원으로 늘어났다. 전국적으로 거제․통영․고성 지역만큼 체불임금이 급격히 늘어난 지역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청노동자 체불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장기적으로 성장잠재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만큼 노·사·정 등 사회의 모든 당사자들이 참여하여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카타르발 LNG선 100척 수주가 주는 기대와 기쁨 그리고 결실이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에게도 골고루 온기가 퍼져야 한다.

이번 소식은 분명 침체위기를 겪고 있는 대한민국 조선산업, 그 가운데서도 거제시의 조선산업 숨통을 틔워주는 초대형 계약임에 틀림없다.

문재인 정부의 성과물로 가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결실이 원청을 포함, 일부 계층에게만 국한된다면 국민들이 그토록 바라던 조선산업의 진정한 부활이라고 볼 수는 없다.

코로나19의 위기가 또 다른 기회이듯, LNG선 100척 수주는 침체된 조선산업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과거 조선호황이던 시절 지역경제가 덩달아 좋았던 것도 노동자들의 소비가 동반되었기에 가능했다. 노동자들의 소득향상은 바로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 메카니즘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내수의 중요성은 이미 코로나 정국에서 재난기금 지원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인위적인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카타르발 LNG선 100척 수주가 노동자들의 소득증대로 이어진다면 거제지역경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룬 값진 대형 수주의 온기가 노동자(하청노동자)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임금격차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임금체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법과 제도까지 역동적으로 만들어 이번 기회에 노사간, 노노간 사회대통합을 이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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