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희 전 거제시의원
김복희 전 거제시의원

【거제인터넷방송】= 바람이 자유롭다. 햇빛은 별빛처럼 쏟아져 윤슬이 눈부신 견내량 바다이다. 물새들의 노래에 흥이 난 어부들이 거물을 던진다. 하얀 돛을 단 나리선 한척이 “어이!” 소리 나는 곳을 향해 잔잔히 노를 저어 간다.

옛 관리들이 귀양 온 섬. 이 순신 장군의 전적지이고, 우리나라 2번째로 큰 섬을 육지로 만든 최초의 구 거제대교 이야기이다.

1970년 거제대교가 개통하는 날이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뜨고 바다에는 어선들이 오색 깃발을 달고 파도를 가르며 회선을 한다. 북소리와 꽹과리 소리에 갈매기도 흥이 나서 함께 춤을 춘다. 다리 위에는 하얀 옷을 입은 거제군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통영과 거제가 이어지고 바닷길이 육로길이 되었다. 언제나 마음먹으면 통영을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친구들이랑 달밤에 십리도 넘는 길을 차로 갔다가 걸어오기도 했다. 개통과 동시에 문명은 밀물 같이 밀려 왔다. 흙먼지 펄펄 날리며 다니던 자갈밭 길이 아스팔트로 정리되고 초가집 스레트 지붕이 현대식 주택으로 개량되었다. 유일한 육지와의 여객선 둔덕호는 선착장에 발이 묶였다. 하루에 한두 번 다니던 둔덕호를 놓칠 때는 “나 면장 각시요!”하며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옛말이 되었다.

버스, 택시, 자가용이 신바람이 나서 달린다.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조선산업과 함께 5만도 안되었던 군민이 26만까지 불어났다. 우리 거제는 시 승격과 함께 전국에서도 잘 사는 도시로 소문이 났다.

나는 서울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질 때 거제대교를 생각했다.

하나 밖에 없던 거제 대교는 기가 죽고 업신여김을 받았던 우리 섬사람의 위신을 단번에 세워줬다 너무도 가난하고 열악한 우리들의 환경을 튼튼한 다리로 부자도시로 만들어 주었다. 대우, 삼성의 그 무거운 부품과 자재들을 실어 나르게 잘도 견디어 냈다. 육지와 교류를 통하여 거제의 위상을 높여 준 공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도 장한 우리 구 거제대교를 이제 노후 되어 사용도 보다는 관리비를 더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우, 삼성 등 조선소의 불황으로 지역경제 침체가 되어 있는 이때.

늦었지만 역사 문화, 관광산업을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문화가 융성한 도시로 재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들이다.

통영과 거제의 문화관광 사업의 동선이 연결 되어야 한다는 기본 계획을 그려 놓고. 거제대교를 “ 바다위에 장터”라는 슬로건으로 mou를 먼저 체결한다. 양쪽 시에서 주차장 확보를 한다. 차량을 통제 하고 다리 위에는 거제와 통영에서 생산되는 특산품 뿐 아니라 전국 팔도의 특산품을 진열 한다. 다리 위를 거닐면서 먹고. 사고. 팔고. 체험하며 즐기는 전국 장터를 만든다. 전국의 풍물패도 모으고, 각종 문화 예술공연도 하고, 때로는 야시장도 열고, 특히 주말 장날을 정하여 가족이 함께 장 구경을 올 수 있도록 유도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 매체로 홍보하여 앞으로 기차를 타고 싱싱한 해산물의 현장에서 시장을 볼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예 부터 둔덕면은 생활권이 통영이라 음식이나 교육 주거생활 문화가 통영과 연결된다. 

둔덕면의 피왕성과 고려촌을 개발하여 시립박물관의 입지나 접근성을 높여준다. 코스모스 꽃들 포도축제며 청마 기념관과 청마공원 그리고 둔덕천 자연생태를 복원하여 산달도까지 자전거 도로를 연결한다. 해금강 해안도로를 관광 일주도로로 특화 지정하면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오늘도 이 순신 장군의 위엄처럼 묵묵히 서 있는 구 거제대교는 누가 뭐래도 거제를 지키는 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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