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거제인터넷방송】= 신라 경덕왕 때 옥녀봉 아래 아주현이 있었다. 현재는 그 자리에 대우조선소가 들어서 있다.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옛 모습이 아른 거린다.

옥녀봉이 북쪽 바다를 향해 좌우로 감싸고 있는 옥포항 언저리에 거위머리 같이 생긴 산이 있었다. 이 산이 당등산이다. 또는 거북이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승철 시인 수필가
이승철 시인 수필가

지형이 거위를 닮았다고 신라 경덕왕 때, 거위아(鵝) 아주현이 이 지역에 생겼다. 아주현령으로 부임하는 현령은 부임하는 날 자고 나면 죽었다. 영문도 모르는 죽음으로 아무도 아주현령으로 부임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소문은 온 나라에 퍼졌다. 나라에서는 아주현령으로 갈 사람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럴 때 평생을 남의 집 일을 하면서 천박하게 살던 관송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아주 현령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죽도록 일만 하면서 천민으로 살다 죽는 것 보다. 하루를 살아도 양반이란 이름으로 신분을 바꾸고, 현령의 감투를 쓰보고 죽고 싶었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할 때, 냇가에서 굶어죽어 가는 거북이 한 마리를 자기 신세처럼 생각 하고 밥을 먹여 길렀다. 오랜 정이 들어 형제처럼 지냈다. 거북이와 깊은 인연이 되어 떨어질 수 없었다. 아주현령으로 올 때 거북이를 대리고 왔다.

머슴살이 하던 사람이 현령으로 부임 하여, 자고나면 죽을 것이라며 아무도 그를 영접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현청(縣廳)에 촛불을 밝혀두고 무엇이 나타날까? 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우려고 하는데. 새벽이 되니까 졸음이 와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앉아서 졸고 있는데, 그때 천장 대들보에서 기둥만한 큰 지네가 나타나서 입을 벌리고 달려들려고 한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칼을 뽑아서 지내를 향해 내려치는데, 지내는 죽지 않고 칼이 지나간 자리에서 독물이 흘러내린다. 그 독물에 닿이면 죽게 된다. 현령은 기둥을 안고 발버둥 치는데, 그때 거북이가 나타나서 지내를 향해 입에서 연기를 품어 내니까, 지내가 뒷걸음질 치면서 사지를 뒤틀면서 쓰러졌다. 거북이가 내품는 독기에 지네는 쭉 뻗어 죽었다. 지네가 죽고 나서 거북이도 지쳐서 죽었다.

날이 새자 어제 부임한 현령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을 사람들이 초상 치룰 준비를 하고 들어왔다.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 현령은 살아 있고, 기둥만한 지네와 거북이가 죽어 있었다.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은 기겁을 했다. 죽었다고 생각한 현령이 살았다는 소문이 온 마을과 나라에 퍼졌다. 그 소식을 들은 왕이 현령을 살려준 거북이를 천도하기 위해 아주당에 거북이 당집을 지어 천도제를 지내라고 했다. 그때부터 당집이 있다고 당등산이라 한다. 또는 거북이가 사람을 살린 곳이라 하여 거북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해안 변에는 아름드리 노송이 즐비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는 몽돌 밭과 모래 해수욕장이 있었다. 당등산과 해안의 숲이 절경을 이루고 잔파에 일렁이는 몽돌의 자연악과 황금빛 모래는 아주해안에 비경을 이루었다. 주변에는 신라시대 삼층석탑을 비롯하여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고분군, 그리고 용이 승천 했다는 용소와 아주천이 한 태 어울려 관광 휴양지로 더 없이 좋은 역사의 고장이었다.

주변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고, 산록과 해안변에 주택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돌담장 초가집이 정감을 이루었다. 아주장터가 있었던 마을은 장터가 있었다고 장기(場基) 마을이고, 신라시대 석탑이 있었던 곳은 탑골마을, 옛 아주현지는 안골마을, 당등산 아래는 당목마을, 현령 관송이 살았던 관송마을, 용이 승천했던 용소골, 아주 현성이 있었던 성안 마을, 곳곳에 선사시대 유적과 전설이 있는 곳이다.

당목에서 길 따라 오르면, 이 산 정상에 신라 때 축성한 산성이 있고, 산성 안에는 당집과 우물이 있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임진란 때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을 한 옥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멀리 부산항과 가덕 등대가 가물거린다.

이곳에 1957년에 신용균 민선 교육감이 옥포대승첩 기념탑을 건립하고, 매년 기념제전과 한글백일장과 학예 발표 등 다양한 행사를 하면서 나라사랑의 얼을 기리던 당등산이다.

1973년 10월 11일 옥포조선소가 착공식을 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당등산을 보존하여 외국인의 숙소와 직원들의 휴양지로 사용 하라고 했으나. 당시 남궁연 사장이 매립에 어려움이 있어서 가까운 곳에 있는 당등산을 헐어서 매립하는데 사용 하였다.

조선소로 인해 정든 옛 터전을 버리고 떠나간 480세대의 이주민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계단을 오르는 길옆에 장목 비장청을 뜯어다 지은 옥포정의 찬란한 단청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정감을 넘치게 했다.

교통이 불편 할 때 먼 거리 걸어서 와서 점심도 굶으면서도 배가 고픈 줄 모르고 우리의 얼과 정신문화에 즐거움과 환희의 기쁨을 즐기던 곳이 당등산이다.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전설이 깃들어 있는 당등산과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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