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천 지능팀장
몇년전 미국의 범죄학자가 교도소에 수형중인 강도,절도등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범행의 착수(着手)와 포기(抛棄)의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을 조사한 적이 있었다. 만약 범행을 결심하거나 포기할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80%가 넘게 형량(가령,"살인은 무기징역 또는 사형에 처한다"는 등) 보다는 "잡히지(들키지) 않을 확률"을 선택했다고 한다. 아마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같은 조사를 해도 그 결과는 비슷하게 나올 것이다.

엊그제 한 대학교수가 아내를 살해하여 낙동강에 유기한 사건이 있었다. 그 역시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완전범죄를 꿈 꾸다가 결국 아내를 살해한 강력범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내 최고 일류대를 나와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지방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전공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던 전형적인 전문직 엘리트였기에 주변의 놀라움은 더했다. 아내를 차안에서 목졸라 살해한 후 행적을 조작하고,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사체운반 차량을 약품 세차하고, 쇼셜네트워크(SNS) 본사를 찾아가 메시지 전송기록을 없애는가 하면, 범행을 도운 내연녀를 해외로 도피시키는 치밀함을 보였다. 범행 발각 며칠전까지만 해도 가출신고한 아내를 제대로 찾아주지 못한다고 우둔한(?) 경찰을 호통치고 농락하며 비웃던 그였다. 모든게 뜻대로 되는가 싶던 순간, 50여일간 한적한 강변을 떠돌던 재혼 1년도 안된 아내의 억울한 영혼은 마침내 문드러진 육신을 물위로 내밀어 파렴치한 일류 남편의 허황된 꿈에 종지부를 찍었다.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자기 확신은 사상범(思想犯)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범죄자들의 범의(犯意) 밑바닥에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꿈이다. 이런 꿈은 강도나 도둑놈보다, 오히려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포함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더 뚜렷하다고 한다. 이들은 남보다 우월한 지위나 권한을 이용,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으로 사전에 치밀한 준비와 용이주도한 처신으로 범죄 발각을 더디게 만든다. 때론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막대한 비용 투입을 필요로 한다. 불법성이 바로 눈에 보이는 강도, 절도, 폭행등 소위 "street crime"와 달리, 범죄 자체의 사회적 해악성에 대하여 일반 시민들이 쉽게 체감치 못하는 특성도 있다. 설사, 불법성이 확인되더라도 증거 확보를 위한 수사기관의 능력 부족으로 소추(訴追)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물론, 정치적 고려에 의한 기소권 방기(放棄)나,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재벌들에게 자주 적용되는 불구속, 집행유예, 사면 등 "유전무죄,무전유죄"식의 솜방이 처벌이 더 큰 해악일수도 있지만.

지난 4년간 토착, 권력, 교육비리등 지능범죄수사를 담당하면서 지역정치인이나 공직사회(公共기관을 통칭)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지역 정치인들의 부패는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중앙무대에까지 진출했으니 굳이 여기서 재론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지역 공직사회의 부패에 대한 인식과 척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200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경찰의 3대비리 수사와 관련, 입건되거나 처벌받은 인원이 무려 70명이 넘는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간혹 억울하게 조사를 받고 검찰이나 법원에서 혐의를 벗은 경우도 있었지만, 공직자로 보기엔 너무나 한심하고 도덕 불감증에 깊이 빠져있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의 공직사회가 "그 사람이 그사람"뿐인 인적자원과 능력의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점이다. 자리만 바꾸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안이한 인식도 공직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중 하나다. 공적 직무를 수행하는 기본적 개념이 결여되어 있는데 자리 바꿈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사정(司正)이 몰아치면 쥐죽은듯 하다가 채1년도 안돼 똑 같은 비리가 반복적으로 되풀이 되는 이유를 제대로 알것 같았다. 유,무죄 여부를 떠나 자신이 저지른 잘못으로 조직이 불신받고 동료들까지 연루되어 고초를 겪고 있음에도 반성은 커녕, 완벽한 범죄를 자랑하며 떠들고 다니는 자도 있었다. 그 자초지종을 잘 아는 필자로서는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뿐이다.

물의를 일으키고 지탄의 대상이 된 사람들도 변명하고 부인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왜 시민들이 한결같이 자신들의 처신을 비난하고 있는지 스스로 헤아려 답을 찾아야 한다. 끊이지 않는 부정부패로 인하여 우리가 겪고 있는 더러운 기분(?)은 이 정도면 족하다. 더 이상 내가 태어나고, 살아가고, 뼈를 묻어야 할 고장을 더럽히지 말았으면 한다. 혹 아직도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 있는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있다면, 머지않아 그가 갈곳은 단 한곳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SNS 기사보내기
이상두
저작권자 © GIB 거제인터넷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