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태풍 엘시 때 폭우가 쏟아져 유실된 도로를 마을주민들이 복구하고 있다.
1969년 태풍 엘시 때 폭우가 쏟아져 유실된 도로를 마을주민들이 복구하고 있다.ⓒ이승철 향토사학자

【거제인터넷방송】= 이곳은 둔덕면 옥동마을에서 둔덕으로 내려가는 상촌의 점촌마을 앞 도로다. 이 도로는 1969년 9월 14일 태풍 엘시로 폭우가 쏟아져 유실됐다. 도로가 다 쓸려 내려가서 강바닥이 됐다. 당시는 둔덕으로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자갈길은 군용 트럭이 가끔 산방산에서 나온 장작을 운반해 견내량에서 배에 실어 부산 마산 등지로 내다 팔 때다. 이 도로에 소 구루마가 논밭에 뿌릴 퇴비나 곡식을 싣고 다녔고 옥동, 상촌마을 사람들이 걸어 다니던 도로다. 이때 둔덕에서 고현으로 다닐 때는 대부분 이 길을 지나 언양고개 산길을 넘어서 언양 사등을 지나 고현으로 걸어 다녔다. 현재의 언양 도로는 조상도 초대시장이 새마을과장으로 있을 때 새마을 사업으로 도로를 개설해 그 후에 2차선으로 포장했다.

둔덕은 물 좋고 산 좋고 비옥한 토지가 있어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옥동은 옥녀봉이 있어 옥동이라 불렀다. 그 아래 덕이 있는 덕리와 수해복구 현장은 점촌 마을로 예전에 점골이라 했는데 점골이란 옹기를 굽던 곳이라 전해져 온다.

그당시 사진은 필름카메라로 촬영해 암실에서 현상, 인화까지 직접 제작했다. 이런 기술을 가진 사람이 거제도에 몇 되지 않았다. 그 당시 필자가 나이가 제일 젊은 사진사로 거제군 공보실 임시직 사진기사로 근무했다.

태풍 엘시로 입은 피해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새벽부터 걸어 다니면서 수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점심은 간단하게 도시락을 준비해 다녔다. 고현에서 성포 뱃머리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성내마을에 내려 걸어서 언양 고개를 넘어 둔덕으로 갔다.

상서마을 주민들이 새마을 기를 꽃아 놓고 삽과 곡괭이로 도로 복구하고 있다. 이때 젊은 사람들은 직장을 구해서 나가고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50대부터 70대의 노인들이다. 자력으로 도로를 복구하겠다는 새마을 정신으로 누구하나 불평을 하거나, 고된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협동정신으로 복구 작업을 했다.

새마을 정신으로 복구한 도로를 그 후에 확장 포장해 현재의 도로 모습이 되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살게 된 것도 경제개발 5개년 사업과 새마을 정신이 이루어 낸 것이다. 돈으로 복구를 할여고 했으면 시일도 오래 걸리고,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 나와서 일심 단결해 복구 작업을 하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 그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젊은 사람들도 90대 노인이 되어 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온 국민이 모두 일심단결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해 왔다. 그런 정신으로 이루어 낸 이 나라가 잘살게 되니까, 지역적 갈등과 정당 분쟁으로 정신이 나태해져 간다. 새마을 정신으로 다시한번 협동 단결하는 그때 그 시절이 돌아오길 기대 한다.

그 어려운 시절에 걸어 다니면서 현장의 기록을 남겼던 사진들이 그때 그 시절의 산 역사를 증명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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