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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시인, 수필가
이승철 시인, 수필가

서산마루에 기울어지는 낙조를 보니 고향생각이 난다.

삶의 터전을 잡기위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68년도에 정착 한 곳이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섬 거제도다.

삶에 급급하여 동분서주 하면서 바쁘게 살다보니 고향을 잊고 살았다. 내 고향은 심산유곡의 합천이다. 앞뒤로 산이 감싸고 있는 산촌에 살다가, 삶의 닺을 놓은 바닷가 섬 마을은 지형적인 여건과 생활문화가 내 고향과는 대조적이다.

새로운 환경 속에 살면서 섬의 생활문화에 익숙해져 고향처럼 정착의 닻을 놓고 살고 있다. 아들 손자의 고향은 이곳 섬 마을이 되었으니 나의 제2고향이 되기도 했다.

세월이 여류 하다는 옛 말이 생각난다. 지는 저 해를 바라보니 나의 여생도 저 해처럼 얼마 남지 안 했구나 하는, 인생무상을 느낀다. 그럴 때 마다 고향 생각이 난다.

다들 고향이 있다. 그 고향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선대의 고향이 있고. 태어나서 살던 유년시절의 고향이 있다. 그리고 삶의 닻을 놓고 사는 인생행로의 제2고향도 있다. 이러한 고향 중에서도 얼릴 때 살던 유년시절의 고향은 많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고, 그리움의 향수가 젖어 있는 곳이다.

그런 그리움을 안고, 인생말년에 고향을 잦아갔다. 산천은 옛날과 같아서 변함이 없는데, 마을은 타향처럼 변해 있었다.

마을길을 걸으면서 옛 추억을 더듬어 본다. 돌담장과 아늑한 초가집, 고불고불한 오솔길을 걸으면서 정담을 나누던 옛 모습과 정든 사람들의 흔적이 바람결에 일렁이면서 지난추억이 되살아난다.

마을 가운데 서 있는 감나무와 여름철이면 마을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었던, 정자나무는 고목이 되어 나처럼 늙어 있고, 이웃 마을로 넘어 다니는 오솔길은 차도로 변했다. 그동안 몰라지게 변한 고향을 보면서 내 인생도 고향처럼 많이 변한 것을 느낀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비녀를 꽂고, 물동이를 이고, 눈이 내린 오솔길을 걸어서 물을 길러 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둥천 너머 개울가에 백화 꽃처럼 피어있고, 아침 일찍 집을 나가서 밤늦도록 일을 하시며, 장날이면 한지(조선종이)를 팔러 나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뒷동산 고갯길산위로 지나가는 구름처럼 선하다.

검정 고무신을 강물위에 뛰 워 놓고, 송사리를 잡든 시냇가에는 개나리가 환영의 꽃향기를 피운다. 그 향기는 동창생 순아의 향기처럼 느껴진다. 마을은 몰라볼 정도로 변해 있어도 가는 곳 마다 옛 추억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해방 후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복을 입고 다니던 학생도 있었고, 짚신을 신고 다니던 학생도 있었다. 그러다가 검정고무신이 나와서 그 신을 귀한 보물처럼 생각 하면서 신고 다녔다. 학교 갈 시간이 바쁠 때는 고무신을 벗어서 양손에 들고 뛰어 갔다. 신발이 자갈밭 길에 걸려 찢어질까 하는 두려움과 귀한 신발을 아끼기 위해서다. 그 길은 이제 차가 다니는 도로로 변해 있다.

책가방은 구경도 못할 때다. 책을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매고 십리길을 뛰어 가면, 책 보따리 속 필통에서 연필 구르는 소리가 발걸음에 따라,‘딸그락 딸그락’장단을 친다. 그 소리에 미래의 꿈을 실고 넘어 오던 고갯길에는 솔바람 소리가 청아하다. 그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추억의 노래 소리로 들린다.

초가지붕 온돌방에서 호롱불을 켜놓고 공부 할 때, 어머님은 물레를 돌리시며 무명실을 뽑으시고 아버지는 짚신을 삼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시던 아버지 어머니의 환한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잦은 흉년으로 먹고 살 양식이 없어서, 겨울에는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 껍질을 벗겨 와서 죽을 끊여먹고, 봄이 되면 쑥과 나물로 죽을 끓여 먹었다. 그렇게 해서 지낼 수 있는 것도 그 당시로서는 큰 행복이었다. 어렵게 살아도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 삼형제가 오손 도손 정을 나누며 지내던 그때가 좋았다.

마을은 변해도 바람소리 물소리는 옛 처럼 변함이 없고, 어린 시절의 추억은 꿈결처럼 되살아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리움과 추억이 있다. 그 추억은 기쁘고 행복했던 시절 보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어렵게 살던 때가 잊지 못하는 그리움으로 남는다.

인생 한평생을 되돌아보면, 하루해처럼 짧다. 지난 유년시절 어려웠던 삶의 추억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고향 산천이 석양 빛 노을처럼 곱고 아름답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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