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가/아픈 마음 하나 달랠 수 있다면/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한 생명의 아픔 덜어 줄 수 있거나/괴로움 하나 달래 줄 수 있다면/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둥지에 다시 넣어 줄 수 있다면/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에밀리 디킨슨
 

▲ 진성진 변호사

작년 이맘때 거제시 종합사회복지관에 가정상담센터 복지사의 안내로 40대 여성이 찾아 왔다. 이 여성은 사색이 되어 울먹이면서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저는 남의 집에 세를 살고 있는데 주인이 맡겨 놓은 보증금을 안내주겠다 합니다!” “왜요?” “저가 키우는 개가 부엌문을 물어뜯었다고 이를 고쳐놓지 않으면 한 푼도 못 내어준답니다.” “전세기한이 언제입니까?” “한 달 뒤입니다.” “보증금이 얼마입니까?” “50만원입니다.” “월세 말고 보증금말입니다!” “월세는 5만원이고 보증금이 50만원입니다.” “500만원입니까? 50만원입니까?” “50만원입니다. 저의 전 재산입니다!!”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주인이 자신의 전 재산인 보증금을 안 내어 주겠다(전세기한이 남아있어 아직 안내어 준 것도 아니다!)고 한다며 복지사를 대동하여 울면서 찾아온 40대 중년여성의 보증금이 5천만원도 아니고 500만원도 아닌 50만원이라니! 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위로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아직 계약기간이 한 달 남아 있으니 그때까지 돌려주지 않으면 저가 도와 드릴 테니 기다려 봅시다.”
그로부터 한참 뒤 그 여성이 사무실로 서류를 들고 찾아 왔다. “장애인인 저의 남편이 몇년전 안마의자를 샀는데 그 외상대금을 갚으라고 서울에 있는 법원에서 뭐가 날라 왔는데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 서류는 ‘안마의자 할부금이 연체되어 이자까지 500만원이상을 지급하라’는 소장이었는데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송달된 것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의자의 구입시점이 7년 전이었고 따라서 상사시효 5년이 경과된 사건이었다. 즉석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으니 청구를 기각해달라’는 취지의 답변서를 작성하여 주고 우편으로 발송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한 달쯤 뒤 그 여인이 다시 사무실로 서류를 들고 찾아왔다. 비타500 2박스를 들고 환하게 웃으면서! 그것은 안마의자 대금지급청구소송의 소취하서였다. “저번 전세보증금은 돌려받았습니까?” “예. 주인이 어찌된 일인지 별말 없이 돌려줍디다. 그 옆집으로 이사 가서 잘살고 있습니다.”
 
작년 7월4일 거제면 장날부터 시작한 ‘찾아가는 법률서비스’가 1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나는 1200여명의 거제시민을 1:1로 만나 그들의 법률적 고민을 직접 듣고 내 나름의 진단과 처방으로 도움을 주려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롭게 배운 것도 있고 건성으로 잘못 알고 있던 것을 제대로 알게 된 것도 있으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문제에 직면하여 가슴을 태운 적도 있다. 다음은 지난 1년간 ‘찾아가는 법률서비스’를 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이다.
첫째, 시민들에게 변호사의 문턱은 아직도 높다는 점이다. 일반시민은 변호사를 만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선 상담료를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과연 변호사를 만날 수 있는지, 본인이 평생 또는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는 문제가 상담꺼리가 되는지 등이다. 그래서 나는 휴대폰번호(010-3215-1090)를 상담자에게 알려주면서 ‘이제부터 이 번호로 연락주시면 바로 도와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
둘째, 진실은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찾아가는 법률서비스’를 계기로 상담하는 거의 모든 사건 현장을 먼저 확인하려 한다. 상담자의 설명만을 듣거나 서류만을 보고 판단할 경우보다 현장을 확인하면 한눈에 사건의 쟁점이 정리되고 법정변론시 재판부를 설득하기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셋째, 분쟁의 해결방법에는 비법률적 방안도 유력하다는 점이다. 나는 그동안의 상담과정을 통하여 법률적으로 접근해서 불리하거나 불가능한 사건의 경우는 인간적으로 호소하는 등의 비법률적 방안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그 점을 상담자에게 알려주어 소송외적인 해결방안을 권고하고 있다.
넷째, 법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고 따라서 일반시민도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법률상식’ 정도는 숙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다보면 누구나 평생 여러 번의 ‘법률행위’를 하게 된다. 오래 전에 수천만을 빌려주고 차용증까지 잘 받아 놓았는데 10년이 지나도록 구두로, 또는 내용증명으로만 변제 독촉을 하는 바람에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한 푼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수차례 있었다.
다섯째, 우리 시민들의 법률적 고민 중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불면의 밤을 보내는 경우, 아무리해도 법률적 해결방안이 없는데 불필요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 소송에 뛰어드는 경우가 예상외로 많다는 점이다. 나는 전자의 경우 ‘전혀 문제없으니 안심하시라’, 후자의 경우 ‘아무리 해도 안 되니 깨끗이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시라’고 단호히 의견을 제시, 정리해주려고 노력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왔다가 나의 한마디 말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는 상담자의 뒷모습에 나는 가없는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나는 1년간의 행복투어를 통하여 이 길이 나의 길임을 알게 되었다. 지난 10년 이상의 시행착오과정에서 잃어버린 나의 길을 이제 비로소 찾아낸 것이다.
‘나’의 행복을 찾아 나선 이 길이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도움이 되는 이상 나는 이 길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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