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원<거제박물관장/박근혜 전대표 특별보좌관>
며칠 전 관내 산악단체의 행사에 참석했다가 느닷없이 축사를 하게 되었다.

그날은 산악인 박영석씨의 실종으로 마음이 우울한 날이기도 했으나, 산과 사람,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기에는 딱 좋은 날이었다. 전날 밤까지 내린 비가 그치고, 기온은 가을날의 여느 아침처럼 쾌적한데다 하늘은 약간 구름을 드리워 강한 가을 햇살마저 가려주는 정도였으니 산행에는 더없이 좋은 날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우리에게 산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산으로 가는 지를 생각하면서 그날의 축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산은 인생에 있어서 고난의 상징이며 동시에 도전의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러 가지 비유 중에 ‘태산준령을 넘어 기어이 목적지에 닿았다.’거나 ‘마침내 산을 정복하듯 인생의 최고봉에 다 달았다.’등의 표현은 산이 고난과 역경의 상징임과 동시에 목적을 의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오를 때 우리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감정을 가질 수 도 있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숲의 향기(구태여 피톤치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가 우리의 심신을 정화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푸는데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며, 산을 오르거나 내려올 때 주변의 나무와 온갖 식물과 골짜기라도 지나칠 때면 ‘졸졸’거리는 물소리 역시 자연의 조화로운 오케스트라가 되어 우리를 즐겁게 한다. 더구나 새소리와 산을 오르느라 흘리는 땀을 식혀줄 시원한 한줄기의 바람이라도 있으면 우리는 순간 모든 것을 잊고 행복하다는 생각들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가을의 산행은 단풍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색의 향연까지 곁들일 수 있으니 먼 산을 바라다보는 것만으로도 좋고 그 산에 깊숙이 침잠되면 세상의 잡사를 잊고 산속에 파묻혀 모든 것을 놓아버려도 좋다는 생각도 해 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감상적 유희만이 산이 우리에게 주는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산을 오를 때 숲이나 바위는 그늘과 휴식의 공간을 제공한다. 숲의 향기와 새소리와 물소리와 바람결까지도 완벽한 조화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즐긴다.

그러다 어느새 산의 정상에 오르면 우리는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과 확 트인 전망에 가슴이 후련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 역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며 행복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상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거나 내려오기까지의 시간에 비하면 정상에 머무는 시간은 대단히 짧다. 그것이 높은 산이면 높은 산일 수록 머무는 시간은 더 짧아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의 정상은 몇 명이 서 있을 정도 밖에 공간을 내주지 않기 때문에 올라오는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기 우해서라도 빨리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산의 정상에 섰을 때는 바위그늘이나 기댈 나무도, 그늘을 드리워줄 녹음 무성한 가지들도 없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는 곳이 산의 정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상에 서면 한 번쯤은 호쾌하게 아래를 내다보고 소리를 지르거나, 손을 흔들어 보이지만, 강한 바람이나 비가 올 때면 본능적으로 몸을 낮추고 내려갈 길을 찾는다.

살기위해 낭떠러지에 바람을 맞으며 서있지 않는 것과 같이 자세를 낮추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임을 안다.

그래서 산은 몸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함을 가르친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혹은 정상에서의 겸손함이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는 방법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또한 산은 정직. 투명할 것을 가르친다. 정상에 서면 숨을 곳이 없다, 모든 것이 다 보여진다. 투명한 햇살에 자신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산을 오르는 모든 사람에게 전부 노출된다. 오르는 도중에는 더러 숨을 곳도 피할 곳도 있었지만 정상은 그런 자리를 허용하지 않는다.

며칠 전 리비아의 무소불위의 독재자 카다피가 한 시민군의 총에 맞아 죽어서 초라한 냉동창고에 뉘어 그 주검은 사람들에게 조소와 눈요깃거리의 대상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권력과 금력 어느 하나 부러운 것이 없는 그였지만, 아무것도 그를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다.

산이 주는 교훈 ‘정상에서 오래 머물지 말고, 겸손하고, 정직하게 살아라’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일까!
북한의 김정일위원장도 이번 일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권력은 오래 지니면 부패하기 마련이고, 절대적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라는 명언이 산을 보면서 생각나는 말이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물어보자. 혹시 내가 사업이거나 정치이거나 혹은 사회적인 면에서 정상에 서 있거나 근접해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저 아름답고 과묵한 산의 교훈을 잊지나 않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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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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